에스큐브디자인랩 대표
기업들 신사업 기획·조직문화에 접목
혁신의 적은 기존 관행 깨지 않는 관성
조직의 리더부터 디자인싱커가 돼야
최근에 예상치 못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디자인싱킹에 대해 들었다. 얼마 전에 법학 학회 모임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한 시대에는 사용자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디자인싱킹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되었다고, 참석했던 경영컨설팅 대표가 전해 주었다. 신학박사 과정 중인 디자인과 교수는 선교지에서 디자인싱킹을 접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지도교수가 제안했다며 놀라워 했다.
디자이너의 생각법인 디자인싱킹이 왜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했을까? 짧은 역사를 살펴보자. 2005년 스탠포드대학에 디스쿨(D.School)이 생겼다. 실리콘밸리의 디자인 전문회사인 IDEO(아이데오)의 교육 비전에 감동한 한 CEO가 500억 원을 기부해 시작됐다. 다양한 전공의 대학원생들에게 창조적 문제해결과 혁신의 도구로서 디자인싱킹을 가르치는 이 프로그램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전세계 대학과 기업에 디자인싱킹 프로그램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2015년 9월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지는 '디자인싱킹의 진화'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발빠른 기업들은 제품 디자인을 넘어 사업전략 수립과 조직의 변화 관리에도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펩시, GE, IBM 등이 어떻게 디자인 중심의 문화를 만들고, 사용자 중심 혁신을 통해 성공하고 있는지도 소개했다.
지난 한 달 새 디자인싱킹을 신사업 기획과 조직문화에 접목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대기업 임원, 중견기업 대표들을 여러 장소에서 만났다. 적어도 서울에서는 확실한 변화가 감지된다. 마음에 조급함을 느낀다. 부산에서 디자인 창업한 지난 3년 동안 디자인싱킹에 대한 관심을 가지거나 알고 있는 조직의 리더를 만나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과제 담당자 선에서 디자인싱킹 전문가를 찾지만, 주로 외부인 교육 행사와 단발성 이벤트용이다.
나의 일머리는 모두 디자인싱킹에서 나왔다. 삼성전자에서는 복잡한 부서 관계 속에서도 급진적으로 협력하고, 두렵지만 미래를 창조한다는 긍적적인 목표를 세우고, 사용자를 직접 만나는 수고로움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공감하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갈 때 좋은 결과가 있었다. 2010년 새로운 대학인 유니스트에서 글로벌하게 가장 급진적인 디자인융합학부를 만들자는 목표로 다른 전공의 교수님들과 끊임없이 대화할 때도, 비전공자를 위한 디자인싱킹 수업을 기획할 때도 나를 버티게 한 건 디자인싱킹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미얀마 양곤의 사회적기업에서 40도 가까운 뙤약볕과 물폭탄 같은 장맛비 속에서 농부들의 집을 방문하고 인터뷰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로 그들에게 맞는 서비스와 제품을 기획했다. 현지 직원들이 디자인싱킹 프로세스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확신했다. 내게 있어 디자인싱킹은 일을 잘하는 방법이며 문화이며 삶에 대한 태도이다
지난주 특강에서 디자인싱킹 강의를 하고 나니, 주관기관의 담당자들이 "우리 조직은 말씀하신 것 하고는 정반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혁신의 적은 관성이다. 하던 대로 하는 것을 깨지 않고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디자인싱킹으로 부산을 변화시키겠다는 무모한 비전을 세웠기에(디자인싱커답지 않은가?) 먼저 우리 회사를 디자인싱킹 조직문화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적용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하도록 직급 없이 닉네임으로 이름을 부른다. 대부분의 과제에 사용자의 직접 경험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한다. 클라이언트 일을 돕는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목표를 세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주도적으로 과제를 진행하도록 한다. 일하기 즐거운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지난 2년간 크고 작은 변화들을 감지한다. 엄청난 학습력으로 디자인싱커로 성장하는 직원들이 있다. 개인의 성장과 변화와 함께 비즈니스도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디자인싱킹은 근본적으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한다.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조직은 반드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나 요즘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먼저 조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창조적이고 변화에 빠른 디자인싱커가 되어서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또한 변화할 마음이 없는 조직에 일하는 개인이라도, 좀 더 긍적적인 마음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작은 프로젝트에 디자인싱킹을 적용해 보라. 장담하건데 일이 달라지고, 재미가 생기고, 일머리가 늘고, 어딜 가든 환영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부산에서 디자인싱킹은 이제 문화여야 한다.
출처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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