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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의 위드 디자인]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리빙랩

에스큐브디자인랩 대표


'제2회 부울경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이 3월 개최됐다. 지역 단위 리빙랩을 메가시티 차원으로 확대해 부울경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연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리빙랩(Living Lab)' 이란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는 의미다. 쓰레기 무단 투기나 불법 주차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가 직접 나서서 현장 중심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혁신 모델이다. 리빙랩은 2004년 미국 MIT 미디어랩의 윌리엄 미첼 교수가 ICT 기술과 센서를 설치한 아파트에 사람들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는 실험실을 두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 유럽에서는 '사

용자 중심 디자인'과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을 사회 혁신과 제품, 서비스 개발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참여적 디자인 방법론들이 리빙랩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혁신 개발이 강조되면서 정부 R&D 분야에 리빙랩 개념이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2013년 과기부가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개발사업'의 추진 체계로 리빙랩 사업을 처음 도입했다. 2014년부터는 행안부와 산업부 협업으로 공공행정 영역에서 수요자 중심의 디자인 방법의 하나로 '국민 디자인단'을 진행했고 2016년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서비스디자인부문 최고상을 받으며, 국민 참여형 정책 개발의 대표적 방법으로 정착되었다. 이제는 다양한 정부 부처와 지자체 사업에 리빙랩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중기부에서도 '리빙랩 활용기술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정선희 위드디자인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리빙랩

국민이 참여하는 디자인이 혁신의 도구로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회 혁신 디자인 분야의 석학인 에치오 만치니는 저서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다. 여기서 '우리 모두'라 함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모든 주체를 의미한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략적 감각을 포함한, 생각과 행동의 방식으로서의 디자인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일본 츠타야 서점의 창립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자본론: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에서 우리가 모두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고, 미래에는 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다고 외친다. 비즈니스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사회적혁신, 지역 발전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리빙랩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정책과 지역 내 현안과 서비스를 디자인할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 더 나은 상태로 바꾸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시민들이 결정하는 디자인 능력이 요구되어진다. 즉 누구에게나 잠재된 디자인 능력이 계발되고 활용되는 곳이 리빙랩이다.


또한, 리빙랩은 전문 디자이너에게도 촉진자로서의 디자이너 역할을 주문한다. 1970년대에 이미,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디자인은 이제 전통적인 디자인 역할에서 벗어나 중재자의 역할, 수직적으로 전문화된 여러 사람을 서로 연결해 주고 그들 간의 수평적인 교류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즉, 디자이너는 디자인 행위를 전담하는 주체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성원이 더 잘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혁신 개발
정책과 지역 현안 등 서비스에 활용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스스로 나서야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디자이너가 이런 것도 하나요?"였다. 다양한 부서의 이해 관계자들과 협의하고 중재하고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개발자나 상품 기획자들이 보기에는 전통적인 디자이너들이 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모든 참여자들이 사용자와 공감하도록 돕고, 통합적인 사고와 실용적인 도구를 통해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리빙랩 운영에 참여해서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돕고 있다. 프로젝트 특성상 기간과 만남이 너무 짧다. 리빙랩 정착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들도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리빙랩은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하며 디자인 역량을 높이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참여하는 사용자(시민), 촉진자(전문디자이너), 전문가, 운영기관 모두가 디자인 작업 방식을 적용해 보는 디자이너가 되어 보면 어떨까. 이 세상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의미를 채워 나가는 곳이다.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에 참여자로서, 촉진자로서, 주관기관으로서 관심과 참여를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는 도구로서의 리빙랩의 효용성과 가능성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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