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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의 위드 디자인] 월드엑스포를 기대하는 디자이너 관점


에스큐브디자인랩 대표


월드엑스포에 대해 시민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유치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내세운 경제적인 효과와 혜택이 전부가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필자는 부산 시민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표현하고, 세상의 모습을 창조해 내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사실에 가슴 뛰며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읽은 모든 산업디자인 역사책은 산업혁명과 1851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개최했던 월드엑스포(만국 산업제품 대박람회)로 시작했다. 월드엑스포는 디자인 혁신의 필요성을 알렸고, 근대 디자인 운동의 발화점이 되었다. 결국 그 정신은 현대디자인 운동의 중심인 바우하우스 운동으로까지 연결되었고, 바우하우스 초대 학장인 발터 그로피우스가 하버드대 건축과 학장으로 가서 미국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산업디자인에서 건축으로 전공을 바꿔 가면서 하버드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정선희 위드디자인 칼럼 월드엑스포를 기대하는 디자이너 관점
정선희 위드디자인 칼럼 월드엑스포를 기대하는 디자이너 관점

경제 효과 크지만 그게 전부는 아냐
좋은 취향·디자인 눈높이 높일 기회
부산 문화 역량 축적 위해 꼭 유치를

나로서는 디자인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월드엑스포를 한국에서, 그것도 부산에서 개최하려고 유치전을 하고 있다니 감개무량하다. 최초 월드엑스포의 가장 큰 영향력은 영국 시민들의 디자인 눈높이, 문화적 눈높이를 높인 것이다. ‘문화는 커다란 배움의 과정이다. 문화라는 배움의 과정으로 지식과 기술이 축적된다’는 반 퍼슨의 말처럼, 월드엑스포를 시발점으로 축적된 그들의 디자인 눈높이는 현재 런던을 디자인 수도, 창조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월드엑스포로 벌어들인 엄청난 수익으로 설립한 박물관 중 하나가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디자인박물관인 ‘V&A(빅토리아·앨버트)뮤지엄’이다. 처음 V&A를 방문한 것은 2000년대 초였는데, 건물 벽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사인을 지금도 기억한다.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 시민의 취향과 눈높이를 높이기 위해 이 빌딩을 짓는다.’ 1852년이 V&A 개장 시점이니 우리나라 철종 시대, 세도정치로 혼란스럽던 그 시절, 영국은 이미 시민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져온 좋은 제품들을 보여줌으로 인테리어와 패션, 제품, 일상의 도구들을 선택하는 취향의 기준과 눈높이가 생기게 하는 것, 그리고 이 눈높이가 있을 때 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좋은 제품과 디자인을 일상에서 보면서 자란 영국의 디자이너들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디자이너의 현실을 생각하며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는 생각보다 빠른 성장을 이뤘다. 베끼기 잘하는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선도자(First Mover)로 급격하게 성장하던 2010년까지의 변화에는 ‘눈높이 교육’이 있었다. 삼성전자의 첫 디자인혁명 10년이 내부 디자이너의 눈높이와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2006년에는 모든 개발자도 ‘기술 눈높이 교육’을 받아야 했다. 엔지니어가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높이가 없다면 디자인 의도대로 디테일을 제대로 살려 낼 수 없고, 결과적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 배움의 축적과 눈높이의 발전이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 내, 마침내 초일류 디자인 기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시작하면서, 20년 전 영국과 한국의 디자인 차이를 느꼈던 것처럼, 현재 부산과 서울의 격차도 절감하고 있기에 월드엑스포를 부산에서 유치한다는 홍보 포스터를 보고는 가슴 벅참과 기대감, 한편으로 걱정이 앞섰다. 런던 월드엑스포와 같은 문화적 영향력을 부산이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한 문화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정보화와 세계화로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어서 엑스포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도 걱정된다.


그럼에도 월드엑스포는 혁신과 변화, 최신 트렌드, 문화의 방향성, 국가 브랜드까지 담고 있는 세계 최대의 축제임은 틀림없다. 부산이 엑스포가 선물해 주는 ‘눈높이 교육’을 습득해 세계적 축제의 장에서 문화적 역량을 축척하고,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기회라 여겨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 혜택 외에도 그 속에 숨겨진 문화적 도약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지금부터 ‘좋은 취향’과 눈높이를 가지기 위한 노력과 경험들이 엑스포를 위한 준비 작업이 될 것이다.


2030 월드엑스포를 꼭 유치하자. 그래서 부산이 세계 속의 도시로 자리 잡고, 누군가에게 와 보고 싶은 도시, 문화와 디자인으로 가슴 떨리는 도시가 되게 만들어 보자. 2030년이 그 격차를 이겨 내는 도약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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